본문 바로가기
로스트아크 캡쳐&정리/감상

라우리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by qmffhrm 2023. 2. 2.

 

지금까지 나온 로스트아크의 Npc 중 가장 복잡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라우리엘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라우리엘은 라제니스의 아버지, 줄여서 '라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유저들의 찬사를 받는 인물이지만, 후속퀘스트나 이후 나온 엘가시아 호감도 퀘스트에서는 라우리엘이 결국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학살자라는 점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아자키엘도, 벨루마테도 결국 라우리엘이 일으킨 학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고, 현재 엘가시아에서 살고 있는 많은 라제니스들이 그럴 것이다. 라우리엘은 '빛의 심판'을 통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에 소위 '불경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죽음을 정당화시키며 사람들을 통제해나갔다. 이렇게 보면 라우리엘의 행동은 황혼의 사제단이 해온 학살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황혼의 사제단 역시 신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학살과 인체실험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모험의 서 이미지

 

이러한 라우리엘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라버지'라는 호칭은 굉장히 이질적이다. 물론 황혼의 사제단과는 달리 라우리엘의 행동은 단순히 라제니스라는 종족을 넘어서 전 세계, 즉 모험가(플레이어)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다. 스토리 내에서 라우리엘의 모든 행동 원리는 큐브였다. 라우리엘은 아주 오래 전부터 6억 번 이상 큐브를 돌리며 미래를 예측해왔다. 그 과정에서 라우리엘은 수도 없이 많은 절망적인 결과들을 보았고, 플레이어인 모험가는 라우리엘이 되어 그가 느꼈을 심정을 직접 체험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엘가시아 메인 퀘스트에서 큐브에서 빠져나온 플레이어에게 카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카단의 말에 따르면 결국 큐브가 보여주는 미래는 모두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라우리엘은 6억 번 큐브를 돌리며 수많은 미래를 보았지만 이는 결국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라우리엘이 그 중에서 찾아낸 최선의 결과가 실제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건 결국 '우연'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라우리엘이 로스트아크 세계관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연의 일치로 그가 본 가능성이 현실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라우리엘의 학살자적 면모는 희석되었고, 대신 '라버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혼의 사제단의 행보와 비교하기에는 무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황혼의 사제단의 목적, 행동 원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적 없다는 거다. 만일 추후 스토리에서 밝혀지는 황혼의 목적이 라우리엘처럼 모든 인류를, 세상을 위해서였다라는 대의에 가까웠다면, 남바절을 비롯해 황혼의 사제단이 저지른 수많은 민간인 살해와 인체실험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라버지'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좋은 목적을 위해서였다는 이유로 라우리엘이 저지른 모든 행동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정당화해야 한다면, 앞으로 나올 스토리에 따라 어쩌면 우리는 황혼이 저지른 일마저도 결국에는 긍정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게다가 라우리엘은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큐브를 6억번 넘게 돌린 데 비해, 현실에서 라우리엘은 큐브라는 가상의 공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루페온의 부재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고 하지도, 고립되지 말고 아크라시아를 도와야 한다고 라제니스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사실 이 부분은 메인스토리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스토리가 있다면 수정될 여지가 있다). 오히려 루페온의 부재를 엘가시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가상에서 그가 6억 번 넘는 실패를 보았다고 해도 그건 현실이 아니다. 큐브에서 죽어가는 라제니스들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지만, 현실에서 그는 빛의 창으로 라제니스를 직접 죽였다. 게다가 금기의 스크롤을 이용해 라제니스들을 불온한 존재로 만들기까지 했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내가 보기에 라우리엘은 결국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로스트아크 스토리에는 민간인 학살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자극적인 장면은 모니터 너머의 유저들의 감정적인 몰입을 쉽게 끌어낼 수 있지만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소재 속에서 다양한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활동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는 '회색지대'[각주:1]가 되어버린다. 예시로, 티엔이 라우리엘의 말에 속은 피해자인지, 아니면 그를 충실하게 따른 가해자인지 한 쪽으로만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선과 악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의 주동자인 라우리엘도 이 회색지대에 해당할 수 있다. 라제니스를, 더 나아가 아크라시아를 위했다는 대의가 존재하지만,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라우리엘을 완전한 선역이라고도, 혹은 완전한 악역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단순히 선한 대의만으로 그를 '라제니스의 아버지'라고 평가하기엔, 그로 인해 죽은 라제니스들은 물론, 라우리엘이 죽은 이후 현재 엘가시아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만큼 복합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한 면모, 행동으로만 그를 판단하는 걸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아주 평범한 사람들』 [본문으로]

'로스트아크 캡쳐&정리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이 늦은 운명의 빛 후기  (3) 2023.11.06
볼다이크 감상  (1) 2023.10.02
플레체 감상문  (2) 2022.11.10
플레체 나오기 전에 끄적임  (0) 2022.10.24
엘가시아 감상  (2)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