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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캡쳐&정리/감상

플레체 감상문

by qmffhrm 2022. 11. 10.

*플레체 스포일러가 담겨있는 글입니다.

 

 

플레체는 업데이트가 된 날 밤에 바로 플레이하긴 했지만(솔직히 연출 버그 있을까봐 다음날 하려고 했는데 선발대 지인이 버그 없다고 해서 밤에 밀었음.) 현생이 바쁘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해서 늦게 감상문을 올리게 되었다.

 

플레체 스토리는 두 개의 사건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아만의 과거, 다른 하나는 세이크리아가 현재 벌이고 있는 일이다. 플레이어는 아만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이크리아의 음모를 막아낸다.

 

예전에 여정퀘스트를 플레이하면서 아만의 과거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때, 남바절에서 아만이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한 것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억울한 감정도 좀 들었는데, 아만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철저하게 숨긴 것은 결국 스토리를 쓰는 개발진이기 때문이다. 아만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남바절에서 헤어질 때까지, 모험가(플레이어)는 아만이 세이크리아 사제이며, 아크를 찾아 순례중이며 데런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아만과 헤어진 후에야 주변인들을 통해 조금씩 아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갔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간접적인 정보에 불과했다. 유일하게 아만의 심정을 알 수 있었던 건 남바절 퀘스트 뿐이었다. 남바절은 스토리 초반부에 플레이어의 멘탈을 깨고 세이크리아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퀘스트지만, 스토리 내에서 실제로 그 사건을 경험한 건 아만이지 플레이어가 아니다. 결국 플레이어가 느낀 감정은 아만의 감정이었던 셈이다.

 

남바절의 아만

 

그래서인지, 이번 플레체 스토리에서는 아만의 과거를 ‘요즈의 환영술’이라는 장치를 통해 남바절처럼 아만이 직접 되어 체험하는 식으로 보여주었다. 아만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아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아만의 심정과 과거를 유추하는 식이 아니라 ‘실제로 아만이 어떠했는지’를 겪게 해준 것이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이전보다 아만의 심정, 왜 아만이 사제의 길을 선택했는지, 아만이 자신이 데런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여겼는지, 특히 남바절을 겪었을 때 아만이 왜 그렇게 자제력을 잃었는지 등등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플레체 스토리가 얼마나 슬펐는지, 아만의 과거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말하려면 끝이 없을테니 구구절절하게 적지 않겠다. 아만의 이름은 사람을 뜻하는 ‘A man’이라고 생각한다. 20년 전 과거에서 안토니오는 어린 아만을 보고 ‘이것’이라고 불렀다는 걸 생각하면, 아만의 이름을 붙여준 건 클라우디아일 것이다. 아마 클라우디아가 아만을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아만은 이름도 없이, 데런이기 때문에 차라리 물건 취급이 더 나은 대접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실제로 아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으면서도 데런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으니). 페이튼의 데런들이 우리는 악마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과 믿음을 함께 공유하고 지내왔다면 아만에게 그런 역할을 해준 유일한 존재가 클라우디아였다. 클라우디아로 인해 아만은 인간으로 살 수 있었고, 이타심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클라우디아가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아만의 세상은 무너졌고, 여태까지 회복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어린 아만이 사용하는 스페이스바 스킬 설명은 있는 힘을 다 해서 '도망'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퀘스트 명과 내용이 말해주듯, 아만은 '자라는 것'에서 도망칠 수 없었고,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교황이 아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해줬지만, 아만은 어머니인 클라우디아의 삶이 자신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 게시글에도 적었지만 플레체 공개 일러스트를 봤을 때 아만이 어린 자신(과거)의 손을 잡아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레체를 다 플레이하고 나서야 그건 아만과 유저의 희망사항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남바절을 생각하면 아만은 그의 과거, 상처(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못했다.

 

엘가시아 후속퀘에서 아만이 자신의 손을 꽉 쥐는 장면에서 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만의 과거를 통해 그 손동작이 아만의 어머니인 클라우디아가 알려준 마법이라는 걸 알고 나니 아만이 내내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플레체 성당 지하에서 모종의 의식을 치르기 직전까지도, 의식이 끝나고 나서도, 마지막에 클라우디아의 묘비 앞에서 플레이어와 실리안에게 작별을 할 때도. 아만이 한 손을 움켜쥐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왔다. 

자신에게 넌 변하지 않았다면서 다시 한 번 돌아가자고 말하는 실리안과 플레이어를 보는 아만은 어쩌면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만이 지게 된 운명이 대체 어떤 것인지, 다음 스토리에 등장할 때는 조금이라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의미심장한 퀘스트 내용

 

 

한편 플레체 스토리는 최근에 나온 스토리 중에서 비판이 많은 스토리기도 한데, 내가 본 비판들 중에 기억 남는 이야기는 1) 해결되지 않은 떡밥들, 2) 아만은 대체 왜 플레체로 오라고 한 것인가, 이다.

 

1) 물론 이 부분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로아를 플레이하면서, 어떠한 사건에 대한 설정들을 통해 유저들이 A, B, C라고 추측하고 있었다면 새로 나온 스토리는 “A와 C는 확실하게 아니지만, D나 E일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스토리가 풀리고 있다고 느껴왔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어오는 피로감과 답답함이 이번 플레체 스토리에서 한계에 달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고, 아직 1부에 머물러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핵심 설정/떡밥을 회수하는 것은 이른 시기가 맞을 것이다. 로아가 소설이나 만화가 아닌 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게 느리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필연적인 지루함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플레체 스토리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중요한 설정들을 유저가 맵에 숨겨져 있는 스크립트를 찾아내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맵에 숨겨져 있어 플레이어만 알게 되기 때문에, 예시로 “교황의 신변에 이상이 있다”라는 중요한 사실을 다른 npc들에게 알릴 수 없다는 점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겨놓은 설정들이 메인스토리의 흐름에 함께 부각된다면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 있지 않았을까?

성당 지하에서 발견한 교황의 편지를 페데리코에게 전해줬더라면?

 

2) 아만은 왜 플레이어를 플레체로 불렀을까..는 솔직히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아만이 플레체로 우리를 부른 덕분에 플레이어와 실리안은 잡혀있던 데런들을 구할 수 있었고, 실리안의 경우에는 세이크리아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루테란(Luteran)이라는 이름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마틴 루터에서 비롯된 단어 Lutheran(루터주의자/루터파 교회)에서 기원한 거라면 나중에 실리안이 세이크리아의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망치듯 떠난 남바절과는 달리 아만에게 실리안과 플레이어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고, 동시에 실리안과 플레이어는 여전히 아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만에게 언제라도 돌아올 장소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모험가와 너무 빨리 헤어졌음에도 아만은 로스트아크에서 중요한 npc이며 메인퀘스트나 일반 퀘스트에서도 아만의 운명을 꾸준하게 언급해왔다. 이번 플레체 스토리를 통해 그런 아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런 과거가 아만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줬는지 잘 알게 되었다. 아만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극의 크기 때문인지, 해결되지 않은 설정들 때문인지, 다시 아만이 떠났기 때문인지 속이 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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