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스트아크 캡쳐&정리/감상

볼다이크 감상

by qmffhrm 2023. 10. 2.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볼다이크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로스트아크의 행방을 알기 위해 볼다이크에 방문한 플레이어가 움벨라에 들어가기 위해 현자 시험을 보고, 현자가 되어 움벨라에 다녀온 직후 혼돈의 가디언이 나타나 볼다이크를 공격했으나 이를 막아냈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볼다이크는 지혜로운 현자들의 도시로, 현자들은 연금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볼다이크에서 마주하는 건 현자들의 지식과 연금술의 정수만은 아니다. 여러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인간의 오만과 두려움, 그리고 위선이며, 그것들이 지혜와 함께 볼다이크를 떠받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볼다이크에서 일어난 일은 결국 현자들, 즉 인간의 오만에서 기인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어가 현자가 되어 상아탑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되는 것은 그들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기록한 그림들이다. 현자들의 뿌리인 세이크리아의 수도 라사모아가 불타는 모습, 그리고 신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모습.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사슬전쟁에서 고통받는 존재가 오직 인간으로만 그려진 모습에 의문을 품는다.

 

 

  사실상 볼다이크가 품은 첫 번째 오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슬전쟁을 포함하여 라사모아가 침공받은 계기인 포튼쿨 전쟁의 피해자는 인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포튼쿨 전쟁 같은 경우는 인간(세이크리아)의 탐욕으로 일어난 전쟁임에도, 상아탑의 그림은 인간의 가해자적 면모는 철저하게 배제한 채, 불가항력적 존재의 도구이자 재앙에 의한 피해자로만 그리고 있다.

 

 

  볼다이크의 현자들이 선택한 지식/기술은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다양한 금속을 조합해 완벽한 물질인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지만, 근대 과학, 특히 화학이 발달한 이후 미신으로 치부되며 잊혀졌다. 하지만 연금술은 철학적인 면에서도 기여했는데, ‘납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생각은 사람도 잠재력을 끌어내어 새로운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계몽했다.[각주:1] 한편 연금술에서 물질을 금으로 바꾸어준다고 믿어지는 현자의 돌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하며, 연금술의 용기들은 자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건[각주:2]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한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볼다이크의 연금술로 만드는 호문쿨루스는 주변 환경의 생명력을 흡수해 호문쿨루스에게 불어 넣어 살아가게만든다. 즉 연금술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볼다이크의 연금술은 종교(세이크리아)를 떠난 인간이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신과 동등하게 서고자 하려는 두 번째 오만함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볼다이크 현자의 탑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두려움하면 예전에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 유시민 작가가 나와서 들려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각주:3] 과거 유시민 작가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만난 제정원 신부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대신 형인 ()제정구 선생을 만난다. 종교를 가지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냐는 유시민 작가의 질문에 제정구 선생은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건 신이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인간은 절대 두려움을 없앨 수 없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참는 것이다.”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위 일화를 고려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겠다, 즉 신이 되겠다는 욕망을 가진 볼다이크의 현자들이 사용하는 기술인 연금술에도 비슷한 욕망이 담겨있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치점이자, 필연적인 관계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벗어날 수 있는가?

 

 

  또한, 초월적 존재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결국 초월적 존재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피해 의식을 가졌음에도 연금술로 만들어 낸 호문쿨루스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결국 그들이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호문쿨루스를 완전한 생명체로 보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지만, ‘생명력을 이용하여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를 완전히 도구, 즉 물질로 보아야 하는가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전대 대현자 아덴토조차도 자신의 심장을 바침으로서 전설의 호문쿨루스를 만들었으나 그로 인해 호문쿨루스에게 꼭 필요한 감정적 교류를 하지 못한 것과, 어디까지나 세헤라데를 위험으로부터 볼다이크를 지켜줄 목적으로 만들어 낸 도구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세헤라데는 소멸될 때까지 탑을 지켜야 한다는 목적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 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예외적인 인물은 마리우라고 느껴진다. 플레이어가 만든 호문쿨루스는 물론,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호문쿨루스는 모두 사람, 혹은 동물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오직 마리우의 호문쿨루스만 막대기, 혹은 창이라는 도구의 형태를 하고 있다. 호문쿨루스가 정해진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실용적인 ‘도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마리우는 그 본질에 가장 충실한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럼에도 마리우는 호문쿨루스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인물이다. 어쩌면 순박하고 순수한 인물이기에 호문쿨루스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볼다이크의 현자의 탑은 계속해서 증축되고 있다는 점, 그들의 지식이 오만에서 비롯되었으며 신과 같은 입장에 서려고 했다는 점, 스토리의 마지막에 아크의 빛과 혼돈의 힘이 결합하여 탄생한 초월적 존재, 가디언들에 의해 공격받아 파괴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상아탑보다는 바벨탑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볼다이크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이전 대현자인 아덴토는 자신의 심장을 바쳐 만들어 낸 전설의 호문쿨루스는 상아탑을 겨우 지키는 데 그쳤을 뿐, 볼다이크와 아크라시아에 등장한 혼돈의 가디언, 그리고 악마 모두를 없애지는 못한다. 모든 사건을 겪고 난 이후 볼다이크가 선택한 것은 타지역과의 연대다. 마이어 마을의 아티엔의 일갈처럼, 탑에 틀어박혀 연구에 매진하는, 방관자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지식을 공유하며 아크라시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막아내기로 결정한다.

 

 

 

 인간은 결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하지만 타인과의 연대는 두려움을 참고 견디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볼다이크 현자들의 태도 변화는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로 느껴졌다. 지식인과 달리 지성인은 지식을 이해하고 깨닫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갈 때 의미를 가진다.[각주:4] 거대한 사건을 통해 오만을 품고 있던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에야, 볼다이크의 현자들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현자가 된 것이다.

 

 

 

  +) 볼다이크의 지식과 현자들의 방식 모두를 비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현자 시험을 보는 방식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현자 시험을 보기 전, 닐라이의 도움으로 현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사실상 호문쿨루스를 만들고 난 이후에 보여주는 컷씬은 모험가가 푹 쉬고, 여유 있는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건에 쫓기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휴식을 가진 모험가는 마침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들여다본 모험가의 내면은 마치 백지처럼 하얗다. 프롤로그부터 볼다이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마음에 어떤 인상도 각인되지 않고 어떤 관념도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타불라 라사처럼 모험가의 내면은 텅 비어있었다.

 

텅 비어있는 모험가의 내면

  다른 말로는,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사건들을 돌아보며 각각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자 시험을 보기 전, 느긋한 휴식을 가진 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어려우니까.

 

  이후 모험가는 현자 아이작의 도움으로 과거를 반추하며 내면을 채워나간다. 물론 경험한 과거가 모두 뿌듯하고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그 과정에서 모험가는 후회와 같은 부정적인 기억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직접 만들어 내 애정을 쏟은 호문쿨루스의 도움으로 부정적인 기억을 극복한 모험가의 내면은 마침내 가득 채워지고 색채를 가지게 된다. 과거를 반추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이 경험한 모든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긍정하게 된 것이다. 단단한 내면을 가지게 된 모험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운명의 빛이 나왔는데 이제야 볼다이크 감상문을 올리네요...

이것저것 생각하는 건 많은데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계속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보니...연휴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완성 못했을듯....

 

  1. https://if-blog.tistory.com/5682 [본문으로]
  2. 정재서·전수용·송기정,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본문으로]
  3. https://youtu.be/VfQuJN3GZUI?si=hHs3ij8DCTmP_OLf [본문으로]
  4. 김순아, 지식인과 지성인 http://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1609 [본문으로]

'로스트아크 캡쳐&정리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이 늦은 운명의 빛 후기  (3) 2023.11.06
라우리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5) 2023.02.02
플레체 감상문  (2) 2022.11.10
플레체 나오기 전에 끄적임  (0) 2022.10.24
엘가시아 감상  (2) 2022.05.01